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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의 하루

조회 수 10170 추천 수 0 2008.10.08 05:42:39

한국에 여러 가지 일정이 잡혀서 몇 일전 한국에 다녀왔다. 숨이 헉헉 막히고, 좁아터진 비행기 좌석 안에서 이리도 움직이지를 못하고 저리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1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죽을 맛이었지만, 그래도 30년이 넘는 세월을 넘어서 어린 시절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떠있었다. 어떻게 하던 비행기 안의 지겨운 시간을 때우려는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내 마음은 열 몇 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인가 친구들하고 북악산을 놀러가게 되었다. 그날따라 보통 날보다 더 많은 친구들이 함께 가게 되었고, 나는 보통 때보다도 친구들에게 폼 잡아 더욱 터프하게 보일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다. 마침 저쪽에 물이 꽤나 많이 고여있는 웅덩이의 끝자락이 절벽을 그리며 폭포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야, 나는 말이야 무서운게 없어. 잘 봐..”하며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두 팔을 쭉 펴고 평행을 유지하면서 웅덩이 끝자락을 천천히 걷기 시작한 것이다. 친구들이 황홀과 존경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것이라는 우쭐한 마음으로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중심을 잡으며 열심히 걷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친구들의 휘둥그레진 얼굴들을 직접 보고,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거만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는 순간, 아차 그만 중심을 잃고 쭉 그 절벽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이그그 난 죽었구나!’ 한참을 미끄러져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불과 몇 초 사이였을 텐데... 나에게는 무지하게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이제 돌 뿌리에 머리가 깨지든, 거꾸러 쳐 박혀 코뼈가 나가든 나는 이제 큰일 났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내 머리에는 둔탁한 살과 부딧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나는 그 살을 타고 쭐떡 미끄럼을 타듯이 물속으로 떨어졌다. 별다른 충격이 없어서 ‘휴 다행이다. 살았군!’ 하며 물속에서 나와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는 순간, 어떤 아저씨가 완전 누드바람으로 물속에 벌렁 자빠져있는 것이 아닌가? 그제서야, 내가 누구 위로 떨어졌는지 감을 잡을 수가 있었다. 바로 계곡 아래서 목욕을 하고 있던 아저씨의 목 위로 깃털같이 가벼운 내가 떨어져준 것이다. 아저씨는 전혀 움직이지를 못했다. 아마도 목을 다친 듯싶었고, ‘윽’하는 소리 한마디 못한 채 나를 째려보며 끙끙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큰일이었다.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랐다. 한참을 망설이는 동안에 친구들은 정신없이 계곡 아래로 뛰어 내려왔고, 아저씨를 나와 함께 물속에서 낑낑거리며 건져내었다. 홀딱 벗고 있으니..., 옷은 입혀야겠는데... 도저히 빨리, 빨리 옷이 입혀지지를 않는 것이었다. 할 수없이 아저씨의 벗어놓은 옷으로 둘둘 중요한 부분만 말아서 친구들과 팔, 다리, 머리, 사지를 나누어 들고서는 병원으로 옮기려고 헐떡거리며 빨리 빨리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한 친구 녀석이 “너 이제 큰일났다. 너 이제 경찰에 잡혀 들어갈꺼야. 이제 영호는 큰일났다, 큰일났다. 너 어떻게 하니? 아저씨가 다쳤으니 너는 이제 큰일났다. 너 미국가기는 다 틀렸다.”하며 호들갑을 떠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무서웠다. 나를 경찰이 잡아갈 것만 같았다. 안되겠다 싶어 친구들과 의논한 끝에 움직이지도 못하는 아저씨를 산 밑에 버려두고 우리는 도망했다. 그 아저씨를 누군가 병원에 데려다 주길 소원하면서 말이다. 이 사실이 공소시효가 지났을까?? 그저 용서만 바랄 뿐이다. 그 때 그 곳을 꼭 한번 다녀와야겠다란 마음이 앞서니까... 시간이 더욱더 가지를 않았다. 수많은 추억들을 태평양 하늘에 그려가며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옛날의 김포공항과는 비교가 되질 않았다. 거대하고 웅장했다. 작은 개울과 개나리, 개구리.. 맑은 공기 이런 것들은 머나먼 옛 기억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래도 위로가 되었던 것은 청계천의 깨끗한 물소리를 그나마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옛것은 좋은 것이다. 지금보다도 훨씬 더 많이 좋은 것일 수 있는데.... 쓴 입맛만 다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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