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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수가 고추를 잘랐어요.

조회 수 17260 추천 수 0 2008.12.06 13:45:39

꽤 오래전 일이다. 입소자들이 급작스레 늘어서 샤워 룸 하나 갖고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게 되었다. 2층에 샤워실을 4개를 만드느라 공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선교회를 세우고 4년이 조금 넘자 형제들만 한 삼 십 명이 넘어가고 있었기에 샤워장을 늘리기로 한 것이었다. 덕분에 샤워실 바로 옆에 독방을 차지하고 있던 유진이의 방이 졸지에 없어져서 입이 다발 나온 유진이의 비위까지 맞추며 샤워실을 만들어야만 했다. 당분간 샤워할 곳이 없어서 선교회 앞마당 세탁장 한구석에 딱 하나 간이 샤워실을 만들었고 30여명이 한꺼번에 사용해야만 했다. 그래서 무척이나 불편하였다. 누군가 샤워를 하고 있으면 빨래를 못하고, 빨래를 하고 있으면 샤워를 못하고……. 삼 십 명이 넘는 식구들이 시간 맞춰 샤워할라 빨래할라 하니 그 곳은 비어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좁디좁은 그곳에 샤워하고, 빨래 돌리고 그 세탁장 안은 온통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누가 바로 샤워하고 나올 때면 뿌연 습기가 가득 차서 눈앞에 안개 낀 것 마냥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옆에 줄줄 세어 내리는 샤워장에서 흐르는 물들은 작은 개천을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그 세탁장에 들어갈 때는 형제들 모두가 운동화가 아닌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들어가곤 했다. 서로 서로 샤워를 빨리 하려고 줄까지 서게 되면 그곳은 더욱 복잡해지기 때문에 가능한 오전 오후로 조를 나누어 샤워를 하기로 잠정적 약속을 하였는데. 갑수라고 엄청 잘 먹고, 힘이 좋은 녀석이 자기 샤워시간도 아닌데 그냥 쑥하고 들어가 버린 것이다. 간발의 차이로 샤워를 놓친 녀석은 불평이 여간 많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갑수가 힘만 좋은 것이 아니라 정신도 약간 돌아 있는 아이고, 정상이 아니었기에 뭐라고 혼을 낼 수 있거나, 다시 들어가 끌고 나올 수 있는 상황이 되지를 못하였다. 그런데 갑수가 들어 간지 30여분이 되었는데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때를 불려서 닦아낸다 하더라도 그렇게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갑수야, 안에 있냐?” “엉 나 지금 샤워하는데.” “야 빨리 좀 나와, 거기서 뭐하냐?”

“조금만 기다려 곧 나갈게” 이렇게 말을 주고받은 지 또 몇 십분 나중에는 기다리던 녀석이 도저히 참지 못하겠는지 온통 인상을 팍 쓰고는 그만 샤워룸 문을 활짝 열어버렸다. 그러나 문을 열어본 순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온통 간이 샤워룸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시뻘건 핏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야~ 갑수야! 너 어떻게 된 거야?”하면서 커튼을 열어젖혔는데…….

“악”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샤워룸에서 기다리던 그 형제는 허겁지겁 달려왔다.

“목사님, 목사님!! 갑수가, 갑수가 고추를 자르고 있어요. 고추를…….”

상상도 못했던 나는 “갑수가 고추를 잘라?? 오늘 저녁에 먹으려나 보지.”

“아니요, 아니요 자기 고추요, 자기 고추.”

“엉?? 그럼 마당에 심어 놓은 거?? 싱싱한 거 먹고 싶은가??” 내가 연신 동문서답을 하고 있으니 답답해진 형제는 “아니요, 샤워 실에서 갑수가 자기 고추를 자르고 있단 말의여요.”

“뭐라고???” 너무나 당황스러워 나는 용수철처럼 튕겨져 밖으로 나갔다.

샤워룸 안에서 갑수가 자신의 고추를 면도칼로 자르고 있다니…….

갑자기 열려진 커튼과 그 밖에서 주르륵 서서 지켜보는 아이들, 깜짝 놀란 갑수는 수건으로 몸을 감싸고 샤워실에서 2층 자기 방으로 올라가 대충 아무렇게나 옷을 입고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정신없이 선교회 밖으로 도망치는 것이었다. 맨발에 고추자르다만 몸을 하고서 말이다. 달려가는 데로 핏물을 조금씩 흘리고 있었고 우리는 이것을 표적으로 마냥 뒤 따라 갔었다. 그러나 어디로 갔는지 도무지 찾을 길이 없었다. 갑갑하고, 안타까웠다. 상처투성이 갑수 인생의 가는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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