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신의 얼굴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 얼굴이 잘생겼다 못생겼다 말하지만, 그 평가는 다른 사람들의 것이다. 거울이 우리 얼굴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지 않느냐는 의견도 설득력이 없다. 우리가 거울에서 확인하는 것은 ‘거울’이라는 매체를 통해 비친 얼굴일 뿐이다. 입체인 인간 모습을 평면에 가둬 버리는 사진 속의 얼굴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우리는 자신의 진짜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평생을 산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소속된 곳에서의 직책이나 소유물,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나 자신이라고 말하면 편하다. 그러나 편의성이 곧 진리는 아니다. 어느 회사 부장이니 부자니 시민 단체 회원이니 하는 것들을 자신과 동일시할 수 없다.
예수님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보다 그 안에 숨어 있는 속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치신다. 속을 드러내기가 두려워서, 우리는 우리가 뒤집어쓴 것이 껍데기인 줄 알면서도 가짜 사람, 소문의 삶에 매달려 사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남김없이 아시는 주님 앞에서라면 자신을 내보이기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낱낱이 꿰뚫어 보시는 주님의 능력을 믿지 않는다는 의미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정직하고 겸손하게 질문함으로써, 루머의 숲을 지나 주님과 동행하는 진실한 삶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다. 바리새인은 회개조차 자기 의로 여기지만, 그리스도인은 자기 의의 뿌리까지 회개하는 자다. – 팀 켈러